성령충만이 뭘까?
과연 어릴적부터 교회를 출입하는 동안 경험했던 이런저런 일들 중 몇몇 경우가 진짜 성령께서 충만하게 임재한 경우였을까? 늘 궁금하다.
주변엔 나보다 훨씬 더 강력한(?) 성령 체험 혹은 성령 충만한 이들을 많이 보아왔었다. 기도원이나 여러 집회중에 그들이 보인 모습이나 평소에 하는 말투 등을 종합해보면 뭔가 신령스러워보였고 꽤나 있어보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실상 살아가는 모습들을 보노라면 별반 다를바 없고,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성령충만을 깊이 경험한 사람 치고는 문제가 오히려 더 심각하거나 너무나 비상식적인 경우를 종종 경험한다.
그럴때마다 생각하며 고민한다. 성령님께서 그저 스리슬쩍 다녀가신것도 아니고, 충만해서 넘친다고 하는 이들의 삶이 오히려 더많은 분열과 아집 그리고 황당한 모습앞에... '과연 성령 충만하기는 한것인가? 경험하고 누린다고 하는 성령충만의 실체가 혹시 잘못 이해되거나 느껴진것은 아닐까?' 싶은 우려가 그것이다.
정말이지 한국 교회 만큼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간다고 고백하며 간증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정말 기이한 일이다.
이땅에 목사들이 얼마나 많은가! 장로와 권사 그리고 집사들 중에 공석에서 난 성령 희박자'라고 고백하는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체면 때문이라도 앞에서는 거룩한 척, 그렇게 말하고 다니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사석에서는 경우가 다르다. 식사나 술자리에서의 진실한 자기 연민과 고백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성령 무관자 혹은 성령 희박자다'라는 이런 푸념들이 실상 많이 터져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마다 집회마다 성령충만은 단골소재이며 추구하며 '아멘' 크게 화답하는 어떤 영적 로망이다.
그래서인지 자칭 성령충만한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많은지싶다. 어떤 용하다는 점쟁이나 무당들처럼, 곳곳에 성령충만한 어떤 장로, 목사, 권사들이 주변엔 많다. 궁금하다. 이렇게 많은 성령 충만한 이들이 곳곳에 진을 치고 있는데 -마치 바알에게 무릎 굻지않은 7000명처럼- 왜 한국 사회는 더 어두워지고 있으며, 한국 교회는 더 점점 무기력해지며 타락하고 있는가하는 의구심이 짙다. 인터넷이나 사람들 모이는 곳에서는 예외없이 예수쟁이들니 개독교니 사기꾼들이니하는 말들로 아무런 두려움(?)없이 성령충만할것 같은 유명한 목사, 장로(이중엔 대통령도 있다), 유명 인사 ... 등등을 힐난하며 오히려 즐기는 모습들을 어렵지 않게 마주한다. 그런말 들을때 딱히 반론할 마땅한 재료들이 없는 것이 더 문제이다.
나역시 목사지만, 목사들이 더 문제 많음을 알고있다. 가만히 관찰해보면 강단에서 거룩과 진실함과 성령충만을 더 크게 외친분들이 오히려 더 정치적이고 야비하고 무자비한 경우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만나면 괜찮은데, 꾼들로 모이면 이상하게도 변하는 카멜레온 같다. 목사만 회개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것이라는 자조섞인 우스개 소리가 그저 농담으로만 들리지 않는다.
사실상 요즘, 나는 절망하고 있다. 내 자신을 보면서 그리고 이땅의 영적 현실을 보면서... 말은 거창한데 성령과의 동행에서 나오는 진실한 능력이 없음으로 인한 무력감... 바울처럼 말에는 졸하나 삶은 능력있어야 할텐데... 멀고 요원해보여 가슴을 친다.
너무 비관적으로 글을 시작하지만, 현실은 실상 더 심각하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이런저런 문제들을 나열하고 비관하고 고찰한다면 너무나 비참할것 같아서... 그리고 너무 나댄다고 할것 같아서 그저 '알지요...'하고 넘어가는 수준에서 멈춘다.
사도행전은 이런 고통 가운데 함께 읽고 나누었음 한다.
사도행전을 성령행전이라고 표현하는 것에서 희망을 찾아 보고 싶다. 진실로 초대교회부터 지금의 교회에 이르기까지 신실하게 역사하신 성령의 인도하심과 충만케하심이 과연 어떤 모습이고, 그것이 어떻게 우리 삶 가운데 누려져야 하는가를 알아가 봤음한다. 그저 원론적인 이야기나 열정적인 기도 가운데 감나무의 감이 내 입에 뚝 떨어지거나 소 뒷걸음 치다가 쥐잡는 격의 그런 요행수의 성령충만이 아닌 진짜로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어떻게 계시며 어떻게 인도하시며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시는가를 알아보고 싶은 것이다. 바램을 적고 보니깐 너무 거창한것 같지만, 정말이지 알수있음 좋겠다. 그저 기도원이나 교회나 사적인 자리에서 뻐기고 뭔가 있어보이고 은근한 영적 협박 용도의 그런 성령 충만이 아니라, 내 삶을 변화시켜가며, 사회를 변혁시키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는 제자이고 싶을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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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장은 대략은 이러하다.
먼저는 기다림에 대한 명령이 주어진다. 부활하신후 40일간 지상에서 머무시던 예수님께서 남기신 첫번째 명령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날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 받으리라.'이다. 이것은 굉장한 기대감을 발생시키는 약속이며 명령이다. 이 명령의 의미와 긴장감을 관찰하며 이야기 할것이다.
둘째는 승천하시는 장소에서 이루어진 질문과 답변이다. 앞에서의 기대감이 극도에 이르런 상황에서 제자들의 들뜬 질문과 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은 제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버리고 있다. 또한 말씀을 마치시고 순식간에 올리워가시는 예수님 밑에서 제자들은 황망스럽기만하다.
세째는 120명의 제자들이 모여 가룟 유다를 대신하는 13번째 사도를 제비뽑기로 선출하는 모습이다. 기다리라는 명령 가운데 행해진 갸륵한(!) 행동에서 오는 2% 부족함이 얼굴을 훅 붉히며 밀려오는 당혹감! 그리고 오히려 그렇기때문에 소망을 이야기 할수있는 가능성이 열림으로 1장이 마무리된다.
본격적인 성령충만의 유형들이 나타나는 본문은 아니지만, 1장의 이해는 앞으로있을 성령 충만함을 헤아려가는 밑그림이 되기때문에 한부분 한부분이 그래서 중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