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대한민국의 미래는 지금보다 훨씬 과감하고, 급진적인 ‘왼쪽’으로의 행진에 의해서만 어느 정도 빛이 있을 거라는 것이 박노자의 주장이다. 그 험난한 왼쪽으로의 행진 끝에 도달해야 할 곳은 “양육.교육.의료를 공동체가 책임지는 나라”로 표현될 수 있는, 공공성의 국가, 복지국가로의 대전환이다. 그리고 그것은 피를 흘리지 않는 선에서의 전면적인 ‘사회주의 혹은 사회민주주의 세력’이 주도하는 ‘급진적 개혁’을 통해서만 겨우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박노자가 “왼쪽으로! 더 왼쪽으로!”라는 구호와 실천을 선명히 내세우는 까닭은, 워낙에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는 한국 사회의 전반적 흐름에서, 지금보다 훨씬 더 왼쪽으로 기울어져야 비로소 좌우의 날개를 갖고 나는 새의 비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주류에 위험한, 불온한 흐름을 형성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복지국가라는 ‘중간 지점’에마저도 갈 수가 없는 것이다. 실제로 타결될 가격보다 훨씬 더 높은 가격을 먼저 부르는 게 흥정의 원칙이 아닌가?(p.72)”
박노자는 그 근거로 현실에서 복지국가의 모범적 모델이라 할 수 있는 스웨덴이나 노르웨이 등의 북유럽 국가들은 무상 교육과 무상 의료라는 고귀한 열매를 지배자들의 순순한 양보 하에 얻어낸 것이 절대 아니라는 사실을 예로 든다. 가령 노르웨이 노동당의 왼쪽 흐름은 “구소련의 독재를 거부하긴 했지만” 원칙적으로 혁명적 공산주의를 주장했었다. 그 정도의 왼쪽으로부터의 압력이 있었기 북구의 지배층이 불가피하게 양보를 해서 ‘복지 시스템’ 건설에 동의한 것이다.
프롤로그 -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는 자는 과거로 돌아간다
1부 가시밭길, 하지만 갈 수밖에 없는 길
한국에 진보정당이 꼭 필요한 까닭
가난한 사람들이 왜 이명박을 지지하나
‘좌파 민족주의’와의 거리두기
젊은이들은 왜 등을 돌렸을까
한국인, 정말 보수적인가
한국에서 계급 정당을 하기 어려운 이유들
새해를 앞두고 부르주아적 민주주의의 한계를 깨닫다
이명박만 없어지면 우리가 과연 행복해질까
자유주의적 온건 개혁의 미망
노무현 전 대통령을 애도하며, 인간 노무현과 정치인 노무현
‘국가 권력의 평화적 탈환’을 꿈꾸다
계급적 투표가 절실하다
혁명이냐 개혁이냐
비겁한 개량주의자(?)의 고백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아직 싸움터이다
‘독재 타도’를 넘어선 진짜 시민사회의 필요성
서구 민중에 대한 낭만적 꿈을 버려라
혁명이냐 급진적 개혁이냐
‘이론’의 기준은 현실과 실천이다
나의 혁명론 1 - 자발적 동의의 양날
나의 혁명론 2 - 개인적 반란자들의 연대는 어떻게 가능한가
나의 혁명론 3 - 혁명의 조건
나의 혁명론 4 - 반란의 핵, 세계의 준주변부
나의 혁명론 5 - 2009년은 반란의 해가 될 것인가
나의 혁명론 6 - 나라가 망해도 혁명은 없었다
나의 혁명론 7 - 자기 상품화를 즐기는 인간들?
나의 혁명론 8 - 결론을 대신하여
2부 공포공화국을 작동시키는 톱니바퀴들
우리들의 마음 관리자, 자본의 폭력
여승무원들에게 절을 바친다
내가 왜 자본주의를 혐오하는가
강성 노조가 국민 경제를 좀 먹는가
KTX 여승무원, 그리고 허울 좋은 ‘민주화’
개인의 경쟁력 vs. 개인의 생명력
삼성, 우리 마음의 ‘관리자’
끝내 미국에 가지 않은 이유
광우병 논란의 뿌리, ‘광(狂)개발병’
자전거형 사회?경제 모델
가난뱅이는 죽어도 싼가
한국, 발 붙이고 싶어도 붙일 데가 없다
당신은 행복한가요
‘위대한 쿨함’의 제국, 만세!
국가의 폭력, 일상의 폭력
더 많은 인권이 필요하다
‘말을 잘 안 듣는 아이’을 위하여
우리에게 없는 것, 일터 민주주의
‘북방 사극’ 속의 ‘페니스 파시즘’
한국은 왜 이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가
‘무지개 나라’가 되기 위해서
양심적 병역 거부권, 더 많은 투쟁이 필요하다
애써 외면하는 탈남의 행렬
서울은 눈물을 믿지 않는다?
청소부와 장관을 동등하게 대하기
서구인들은 정(情)이 없다고?
공권력은 왜 존재하는가
‘하나님 장사’ ‘부처님 장사 하는 이들에게
배제와 차별이야말로 ‘지옥’이다
왜 한국 기독교는 참회하지 않나
교회, 장기적 보수화의 일등공신
한국 종교인들은 왜 낙태에 반대하지 않나
부처님은 죽이라고 했는가
평화의 아들이 전장에 나가도 되는가
3부 정신의 거세에 맞서는 냉철한 시선
누가 역사를 왜곡하는가
탈민족 담론의 문제점
‘건국절’ 궤변을 반대하는 이유
긍지를 가르치겠다는 뉴라이트의 역사관
대한민국의 역사에 대한 거시적 단상
다시 대듦의 정신이 필요하다
외국 저널의 숭배, 지식 권력의 신비화
페렐만이 괴짜라고?
한 러시아 지한파 지식인의 비극
어느 시간강사의 죽음
세계적 대학을 만들자면
오리엔탈리즘의 현주소
이놈들아, 나를 매장시켜봐라!
신자유주의 한국, 대학이라는 이름의 폐허
주변을 보는 성찰적 시선
한반도 생존의 길
일본의 우경화와 우리들의 우경화
용서할 줄 아는 것도 ‘힘’이다
무소불위의 단어, ‘피해자’
독일에서 ‘반일 감정’을 사색하다
중국 독재에 대한 논쟁
역사의 ‘진보’는 늘 인간의 ‘선’인가
‘신성한 국토’, 20세기 피비린내의 산물
전쟁의 시대가 도래할 수 있다
‘국가’와 ‘민족’이 하나된 이스라엘의 위험성
대한민국과 그리스 젊은이들의 반란
미 제국 패권의 몰락의 속도
‘착한’ 오바마와 ‘착할 수 없는’ 미국 대통령
대공황의 법칙들

그런데 세상은 탈북자는 잘 알아도 탈남자들은 거의 모른다. 내가 이야기하는 탈남자란, 단순한 ‘공식적’ 이민 이외에 사회?문화 등 복잡한 이유로 비합법적 통로를 포함한 각종 통로를 통해서 남한을 떠난, 그리고 남한에 다시 오려고 하지 않는 모든 이들을 총칭하는 말이다. 물론 중국에서의 탈북자와 법적으로 같은 위치에 있는 한국계 불법 체류자들도 여기에 포함돼 있다. 우리가 통상 관심이 없어서 그렇지 사실 북한의 종주국인 중국에 가 있는 탈북자의 수(약 20만 명)만큼이나 불법적 탈남자들(약 19만 명)이 남한의 종주국인 미국에 살고 있다. 탈북자 이야기를 그렇게 좋아하는 해외 언론들이 왜 그 탈남자 이야기는 언급하지 않는 걸까? 거기다가 일본(약 5만 명) 등 세계 각국에서 살고 있는 한국계 불법 체류자들을 다 합하면 30만 명에 육박할 것이다. - pp.178~179 - 알라딘

- pp.22~23, 프롤로그 중에서
한국에서 대중적 진보 정당을 한다는 것은 가시밭길이지만 꼭 가야할 가시밭길이다. 성패 여부와 무관하게, ‘의미 있는 소수’로 존재해도 좋다. 그 소수로부터의 압력마저 없다면 대한민국은 오늘날보다 더 야만적인 ‘중간급 소제국’이 될 것이다. - pp.43~44 - 알라딘





